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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한국 전쟁의 인간적 얼굴

미국장로교회 평화 대표단이 한국의 전쟁박물관 및 여성 인권 박물관을 방문함

캐시 멜빈|장로교 뉴스 서비스

서울, 한국 — 전쟁에는 인간적인 얼굴이 있다. 모든 그림자, 모든 줄, 모든 주름은 이야기의 일부이다.

미국장로교 평화 대표단은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전쟁 및 여성 인권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들은 영어를 하지 못하는 “위안부”의 비디오 인터뷰를 관람했다. 영어 자막이 있었지만 필수는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하였다.

약 2만 명의 여성들이 2차 세계대전 중 일자리에 대한 약속에 이끌려 납치되거나 유혹을 받아 일본군 병사들을 위한 “위안소”에서 성 노예로 강요당했다고 추정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한반도에서 왔다. 일부 여성들은 태국, 중국, 필리핀 등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에서 왔다. 일부는 14세의 어린 나이였다. “위안부 여성”은 경멸적인 용어가 되었기에 이제는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한국에 살고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80세와 90대에 속하고 있다.

할머니는 수년 동안 침묵 속에서 고통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 오지 못하였다. 돌아온 사람들은 부끄러움으로 그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1990년 11월 16일에 일본군인 성 노예 여성 협의회를 창설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 할머니와 그들의 지지자들은 서울 주재 일본 대사관 밖에서 항의하기 시작했다.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법적 보상을 제공하고, 국가의 공식 역사에 그 이야기를 기록하기를 주장하였다.

2011년에는 1,000번째 항의 시위를 가졌다. 매주 수요일마다 그곳에서 아직도 한다.

도시 서쪽의 성산동에 있는 30년된 사택의 벽에는 이 여성들의 역사를 신중하게 기록하고 있다. 약 15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간이지만 그 영향은 강력하다. 소개 비디오가 끝난 후 방문객들은 자갈길을 걷고 대포와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어두운 지하실로 들어가 여성들이 느꼈던 고립과 억압의 느낌을 시뮬레이션 한다. 연구 자료와 비디오 자료가 담긴 운동의 역사를 방문자가 따라갈 수 있는 또 다른 방이 있다. 방의 초점은 옆에 빈 의자가 있는 어린 소녀를 묘사하는 평화상의 복제품이다. 원래 동상은 일본 대사관을 향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여성 동상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위안부의 여성 동상이 등장했다.

박물관 입구 티켓은 희생자들의 실제 이야기와 함께 매일 바뀐다. 11월 1일에는 191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배봉기 할머니의 이야기가 있었다.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약속 된 그녀는 1943년 오키나와 토가스키로 끌려 가서 위안소에 배속된 성적 노예로 강요되었다. 미군이 위안소를 폭격했을 때 그녀는 산으로 일본 병사와 함께 도망 쳤다. 그녀는 나중에 미국 교도소에 억류되었다. 그녀는 석방 후 매춘과 평범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1975년 그녀의 이야기는 지역 신문에 실렸다. 1991년 오키나와에서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집에 돌아 오지 못하였다.

최근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한 쿠안티샤 매이슨Quantisha Mason은 2013-2014년 한국의 청년 봉사단으로 보내어졌다. 그녀는 평화 대표단에 합류하여 2012년에 문을 연 박물관을 두 번째로 방문했다.

“저는 몇 번 이곳에 왔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전쟁에 관해 들을 때, 그것은 항상 남자들이 하는 일이지만, 여성들의 몸 또한 전쟁터이며 전 세계 곳곳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래 동안 이 분노를 숨기고 침묵을 지키며 살기위해 얼마나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한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어떻게 견디었는지 모릅니다.”

South Bay의 한인장로교회 김 하워드 목사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박물관에는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저는 일어난 사건에 대해 수치를 느꼈고, 우리는 여전히 세계 곳곳의 다른 인간에 대한 그런 비인간적 행위를 반복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슬프고 우울합니다.”

노란 나비의 이미지가 박물관 주변에 있다. 나비 기금은 무력 충돌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선정되었다. 이 박물관의 인쇄물에서 “나비는 일본군의 성 노예 희생자를 비롯한 모든 고뇌한 여성들이 차별, 억압,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우리의 바람을 나타냅니다.”

2012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등이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인 배상을 받게 되면 전부 기부 할 것을 서약했다. 이것이 나비 펀드의 시작이었다. 이 기금은 현재 콩고 민주공화국과 베트남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첫 번째 수령인은 콩고에 살고있는 리베카 마스킬라 캇수바Rebecca Maskila Katsuva이다. 1988년 콩고 내전에서 마스킬라와 그녀의 9살, 13살 딸은 군인들에 의해 강간당했다. 남편이 살해당했다. 이듬해 그녀는 유사한 경험을 한 여성들과 강제 임신으로 태어난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Listening House”를 만들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보호소에서 도왔지만, 나중에 강간 당하고 살해되었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한국군은 대학살과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나비 펀드는 현재 베트남의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있다.

평화 대표단은 포틀랜드의 222차 총회(2016)에서 채택된 헌의안12-01과 총대 결의12-13에 따라 11월 1일부터 8일까지 한국을 방문하여 한반도 통일과 평화에 대한 모멘텀 증가의 필요성에 중점을 두었다.

대표단을 이끈 허버트 넬슨J. Herbert Nelson목사는 총회 사무국(OGA)의 정서기이다. 그는 OGA 사무국 에큐메니칼 관계 담당인 로비나 윈부시Robina Winbush 목사와 세계 선교부의 아시아 태평양 담당인 미엔다 우리아르테Mienda Uriarte 목사, 그리고 선교부장인 호제 루이스 카잘Jose Luis Casal 목사와 함께했다. 헌의안을 올린 얼 아놀드Earl Arnold 목사와 강은홍 목사, 카유가 시라큐즈Cayuga-Syracuse 노회원들, OGA와 PMA 대표들도 참석했다.

자원 자료는 현재 이은주 목사가 개발 중이며 내년 초 미국장로교 웹 사이트에서 사용할 수 있다.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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